[송영주가 만난 사람들] 14살 소년의 호기심이 600명의 인생을 만나기까지... 김호이 대표(김호이의 사람들)
인터뷰 거절조차 ‘에피소드’로 만드는 넉넉한 마음이 경쟁력...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다, 오늘 바로 맛봐야 하는 것
오늘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지금 바로 맛봐야 합니다'라는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저축’의 대상으로 여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면 혹은 평생을 일구고 은퇴한 노후가 되면 비로소 그 저축해둔 행복을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저당 잡힌다.
하지만 여기,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맛보지 않으면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다.
14살 소년 기자로 시작해 600명이 넘는 인생의 거인들을 인터뷰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김호이 대표(김호이의 사람들)다. 김 대표가 전하는 따뜻하고도 단단한 인생의 문장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다.
▲ 김호이 기자가 만난 600명의 얼굴 이미지 [출처=학생신문]
◇ 14살 소년의 무모한 호기심,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다
김 대표가 기자로서 사람을 만나겠다고 결심한 시작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앳된 소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순수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발명 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청소년 발명 기자단을 해보지 않겠니?"라는 가벼운 제안을 받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해볼래요!"라고 답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적당히 발만 담그는 법이 없었다. 기차표 한 장 손에 쥐고 인터뷰이(interviewee)을 찾아 대전, 대구, 부산으로 전국을 누볐다.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거대한 인터뷰 대상이었다. 과학창의재단 이사장부터 황우석 박사까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이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는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가 흐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과정이 그 어떤 게임보다 짜릿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험 공부보다 강연장에서 명함을 건네는 일이 더 즐거웠던 소년은 시험 전날에도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곽영길 회장(현 아주경제신문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명함을 건넸던 용기는 그를 현장 경험 10년이 넘는 베테랑 인터뷰어(interviewer)로 성장시킨 결정적 불꽃이 되었다.
◇ "왜 해?"라는 의구심을 "어떻게 했어?"라는 감탄으로 바꾸는 힘
기자로서 성장 과정이 늘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학생이니까 만나주는 거야", "어른이 되면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간을 내주겠니"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소년의 발목을 잡으려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인터뷰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숙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온라인 게임 속 세계에 빠져들 때 그는 현실이라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 '인터뷰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키워나갔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주변 사람들의 말은 바뀌었다. "왜 그런 일을 해?"라고 묻던 이들은 이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해낼 수 있었니?"라고 방법을 묻는다.
꾸준함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는 것을 그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 10대 시절의 호기심을 20대의 전문성으로 일궈낸 김 대표의 뚝심은 꿈을 고민하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 스토리텔러 송영주가 만난 김호이 기자(좌) [출처=학생신문]
◇ 인터뷰 거절조차 ‘에피소드’로 만드는 넉넉한 마음이 경쟁력
김 대표가 10년 동안 만난 600명의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남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선택했고 세상이 '불가능'을 말할 때 언제나 '가능한 이유'를 먼저 찾아냈다. 김 대표 역시 이 긍정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가장 긴 기다림은 무려 5년이었다. 우리나라 ‘뇌 박사’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첫 꿈을 선물해준 분이었기에 기다림조차 설렘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단번에 성공하는 인터뷰보다 수차례 거절당하고 기다림 끝에 성사된 인터뷰가 더 깊은 ‘에피소드’를 남긴다고.
실패와 거절을 좌절의 증거가 아니라 훗날 더 풍성하게 들려줄 이야기의 재료로 삼는 그 넉넉한 철학이 지금의 '김호이' 를 만들었다고 보는 이유다.
◇ ‘인생은 호이처럼’, 각자의 방식을 응원하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 반의 급훈이 ‘인생은 호이처럼’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학생의 이름이 학급의 급훈이 된다는 것, 그것은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가 이미 또래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김 대표는 급훈을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지만 ‘호이처럼’이라는 말은 자기를 따라 하라는 오만한 제안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대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응원을 받아달라는 주문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로 '자신이 인터뷰를 통해 타인의 호기심을 대신 풀어주고 싶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타인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인터뷰어, 그것이 그가 걷고 있는 인생행로다. 인터뷰 와중에 "만약 앞으로 딱 한명만 인터뷰 할 수 있다면 누구?"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망설이지고 않고 단번에 "유재석님을 만나 꾸준함의 비결을 묻고 싶고 유퀴즈에 출연도 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을 꿈꾸는 그는 여전히 가슴이 뜨거운 소년이다.
▲ 스토리텔러 송영주가 만난 김호이 기자 [출처=학생신문]
◇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다, 오늘 바로 맛봐야 하는 것
이번 글의 문을 열며 언급했던 ‘아이스크림 행복론’은 김 대표와 진행한 인터뷰의 백미(白眉)라고 볼 수 있다.
김 대표가 말한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녹아버려요. 우리는 행복을 자꾸만 미뤄요. 대학 가서, 취업해서, 결혼해서... 하지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지금 이 순간, 현재 행복해야 합니다."는 구절이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신과 같은 수 많은 청춘에게 당부한다. 가슴 뛰는 인생의 보물을 찾으라고. 그 보물은 학교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할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그 보물이 한 가지만일 필요는 더욱 없다. 여러 개의 보물을 채워두면 삶이 고단할 때 하나씩 꺼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호이 대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손 위의 아이스크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녹아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일의 단맛을 기대하며 오늘의 달콤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14살 소년 기자가 10년 넘게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달콤하게 맛보아야 할 ‘행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표는 '이제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또한 망설임 없이 답한다. "행복한 어른이요." 돈을 버는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그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가 가슴을 울린다.
오늘 하루, 우리도 김호이 대표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의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입 베어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녹아버리기 전에 말이다.
- 계속 -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면 혹은 평생을 일구고 은퇴한 노후가 되면 비로소 그 저축해둔 행복을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저당 잡힌다.
하지만 여기,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맛보지 않으면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다.
14살 소년 기자로 시작해 600명이 넘는 인생의 거인들을 인터뷰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김호이 대표(김호이의 사람들)다. 김 대표가 전하는 따뜻하고도 단단한 인생의 문장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다.
▲ 김호이 기자가 만난 600명의 얼굴 이미지 [출처=학생신문]
◇ 14살 소년의 무모한 호기심,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다
김 대표가 기자로서 사람을 만나겠다고 결심한 시작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앳된 소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순수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발명 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청소년 발명 기자단을 해보지 않겠니?"라는 가벼운 제안을 받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해볼래요!"라고 답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적당히 발만 담그는 법이 없었다. 기차표 한 장 손에 쥐고 인터뷰이(interviewee)을 찾아 대전, 대구, 부산으로 전국을 누볐다.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거대한 인터뷰 대상이었다. 과학창의재단 이사장부터 황우석 박사까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이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는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가 흐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과정이 그 어떤 게임보다 짜릿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험 공부보다 강연장에서 명함을 건네는 일이 더 즐거웠던 소년은 시험 전날에도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곽영길 회장(현 아주경제신문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명함을 건넸던 용기는 그를 현장 경험 10년이 넘는 베테랑 인터뷰어(interviewer)로 성장시킨 결정적 불꽃이 되었다.
◇ "왜 해?"라는 의구심을 "어떻게 했어?"라는 감탄으로 바꾸는 힘
기자로서 성장 과정이 늘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학생이니까 만나주는 거야", "어른이 되면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간을 내주겠니"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소년의 발목을 잡으려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인터뷰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숙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온라인 게임 속 세계에 빠져들 때 그는 현실이라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 '인터뷰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키워나갔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주변 사람들의 말은 바뀌었다. "왜 그런 일을 해?"라고 묻던 이들은 이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해낼 수 있었니?"라고 방법을 묻는다.
꾸준함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는 것을 그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 10대 시절의 호기심을 20대의 전문성으로 일궈낸 김 대표의 뚝심은 꿈을 고민하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 스토리텔러 송영주가 만난 김호이 기자(좌) [출처=학생신문]
◇ 인터뷰 거절조차 ‘에피소드’로 만드는 넉넉한 마음이 경쟁력
김 대표가 10년 동안 만난 600명의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남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선택했고 세상이 '불가능'을 말할 때 언제나 '가능한 이유'를 먼저 찾아냈다. 김 대표 역시 이 긍정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가장 긴 기다림은 무려 5년이었다. 우리나라 ‘뇌 박사’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첫 꿈을 선물해준 분이었기에 기다림조차 설렘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단번에 성공하는 인터뷰보다 수차례 거절당하고 기다림 끝에 성사된 인터뷰가 더 깊은 ‘에피소드’를 남긴다고.
실패와 거절을 좌절의 증거가 아니라 훗날 더 풍성하게 들려줄 이야기의 재료로 삼는 그 넉넉한 철학이 지금의 '김호이' 를 만들었다고 보는 이유다.
◇ ‘인생은 호이처럼’, 각자의 방식을 응원하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 반의 급훈이 ‘인생은 호이처럼’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학생의 이름이 학급의 급훈이 된다는 것, 그것은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가 이미 또래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김 대표는 급훈을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지만 ‘호이처럼’이라는 말은 자기를 따라 하라는 오만한 제안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대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응원을 받아달라는 주문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로 '자신이 인터뷰를 통해 타인의 호기심을 대신 풀어주고 싶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타인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인터뷰어, 그것이 그가 걷고 있는 인생행로다. 인터뷰 와중에 "만약 앞으로 딱 한명만 인터뷰 할 수 있다면 누구?"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망설이지고 않고 단번에 "유재석님을 만나 꾸준함의 비결을 묻고 싶고 유퀴즈에 출연도 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을 꿈꾸는 그는 여전히 가슴이 뜨거운 소년이다.
▲ 스토리텔러 송영주가 만난 김호이 기자 [출처=학생신문]
◇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다, 오늘 바로 맛봐야 하는 것
이번 글의 문을 열며 언급했던 ‘아이스크림 행복론’은 김 대표와 진행한 인터뷰의 백미(白眉)라고 볼 수 있다.
김 대표가 말한 "행복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녹아버려요. 우리는 행복을 자꾸만 미뤄요. 대학 가서, 취업해서, 결혼해서... 하지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지금 이 순간, 현재 행복해야 합니다."는 구절이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신과 같은 수 많은 청춘에게 당부한다. 가슴 뛰는 인생의 보물을 찾으라고. 그 보물은 학교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할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그 보물이 한 가지만일 필요는 더욱 없다. 여러 개의 보물을 채워두면 삶이 고단할 때 하나씩 꺼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호이 대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손 위의 아이스크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녹아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일의 단맛을 기대하며 오늘의 달콤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14살 소년 기자가 10년 넘게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달콤하게 맛보아야 할 ‘행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표는 '이제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또한 망설임 없이 답한다. "행복한 어른이요." 돈을 버는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그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가 가슴을 울린다.
오늘 하루, 우리도 김호이 대표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의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입 베어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녹아버리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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